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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결말 상징 (미야자키 하야오, 지브리 걸작, 부모 사랑)

by yeon4874 2026. 3. 26.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 삶과 결말, 그리고 가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작품입니다. 과연 이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봅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낸 전쟁과 상실의 판타지

1943년 태평양 전쟁 한가운데, 주인공 마히토는 어머니가 병원 화재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습니다. 1년 후 아버지와 함께 전쟁의 피해가 심한 도쿄를 떠나 우츠노미야시 외갓집으로 이사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군수공장 사장인 아버지는 죽은 어머니의 친동생 나츠코와 재혼했고, 나츠코는 이미 새 생명을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한편에서는 이 설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머니의 친동생과 재혼한다는 소재는 현대적 감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입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생존과 가족 유지를 위한 당시의 선택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불편함을 통해 전쟁이 개인의 삶에 가하는 폭력성을 드러내고자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외갓집 대저택에 도착한 마히토 앞에 거대한 왜가리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판타지의 영역으로 접어듭니다. 왜가리는 계속 마히토 곁을 맴돌았고, 마히토는 왜가리를 따라가다 저택 근처의 거대한 탑을 발견하게 됩니다. 외갓집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은 그 탑이 큰할아버지가 지은 것이며, 큰할아버지는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이 이상해졌고 어느 날 탑에서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이 탑은 곧 현실과 환상을 잇는 관문이 됩니다. 전학 간 학교에서 마히토는 도시 출신이라는 이유로 동급생들의 시기를 받았고, 주먹다짐 끝에 스스로 돌로 자신의 머리를 찍어 피를 흘리는 충격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직접 겪어본 바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해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청소년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비극입니다. 감독은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상실감이 어린 마히토에게 어떤 심리적 상처를 남겼는지를 이 장면을 통해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왜가리는 마히토의 꿈에서 본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마히토를 유혹합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어머니를 구하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목검으로 왜가리를 공격한 마히토 앞에서 왜가리는 거대한 코와 머리카락이 빠진 흉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반대로 이 변신 장면이 지나치게 기괴해 어린이 관객에게는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지브리 특유의 섬세한 작화로 표현된 이 장면은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적 성취로도 평가로 받고 있습니다.

지브리 걸작 속 숨겨진 세계관과 상징들

왜가리와 함께 탑 안으로 들어간 마히토와 할머니 키리코는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 죽은 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이상한 세계에 도달합니다. 바닷가 같은 곳에 떨어진 마히토 앞에는 무덤들과 철문이 있었고, 갑자기 나타난 펠리컨들이 마히토를 밀쳐 철문을 열게 만듭니다. 이때 배를 타고 나타난 젊은 여성이 펠리컨들을 몰아내고 마히토를 구해줍니다. 이 여성의 정체는 바로 젊은 시절의 키리코였습니다. 그녀는 마히토에게 낚시해 온 생선 해체를 시키고, 작고 하얀 생물체인 와라와라들이 이를 구경합니다. 와라와라들은 마히토의 세계에서 인간으로 태어날 존재들이라는 설명을 듣게 되는데, 이 설정은 생명의 순환과 윤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상징이 지나치게 난해하고 불친절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서사보다 이미지와 은유에 의존한 나머지 일반 관객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입니다. 그런데 펠리컨들이 와라와라들을 잡아먹기 시작하고, 히미라는 소녀가 불을 쏘아 펠리컨들을 쫓아냅니다. 키리코는 늙은 자신의 모양을 한 목각인형을 부적이라며 마히토에게 건네고, 왜가리와 힘을 합쳐 나츠코를 찾으러 떠나라고 말합니다. 여행 중 마히토와 왜가리는 대장장이의 집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앵무새들을 마주합니다. 앵무새들은 나츠코가 아기를 가졌기에 먹지 않았다고 말하며, 오히려 마히토를 먹으려 합니다. 다시 나타난 히미가 마히토를 구해주고 집으로 데려가 친절하게 대합니다. 히미는 탑에서 나츠코가 출산 준비 중이니 같이 가자고 제안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마히토의 아버지가 탑의 진실을 듣게 됩니다. 사실 탑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온 바위였으며, 큰할아버지가 그 주변에 건물을 증축했다는 것입니다. 마히토의 어머니 또한 어린 시절 탑에 들어가 실종되었다가 1년 뒤 무사히 돌아왔지만 그동안의 기억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도 밝혀집니다.

탑에 도착한 마히토는 나츠코가 있는 침실에 홀로 들어가 커다란 돌과 누워있는 나츠코를 보게 됩니다. 마히토는 돌아가자고 하지만 나츠코는 여기에 왜 왔냐며 화를 내고 마히토가 싫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붕대처럼 생긴 종이 조각들이 마히토의 몸을 감싸며 나츠코로부터 떨어지게 만들고, 마히토는 침실에서 나와 히미의 품에 안긴 채 정신을 잃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은 감정적으로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나츠코의 거부가 진심인지, 아니면 출산을 앞둔 여성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 사랑과 현실 선택이라는 결말의 의미

눈을 뜬 마히토는 처음 보는 장소에서 책상 앞에 앉아있는 큰할아버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큰할아버지는 도형 형태의 여러 가지 돌들로 작은 탑을 쌓았고, 이 탑으로 세계를 지탱해 왔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자신이 이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어 후계자를 찾고 있다며 마히토에게 자신의 뒤를 잇고 탑을 쌓으라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마히토는 돌에 악의가 있다며 단호히 거부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이것이 미야자키 감독 자신의 은퇴 선언이자 후계자에 대한 걱정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창조의 세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불완전하더라도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읽히기도 합니다. 반대로 이러한 난해한 결말이 관객에게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큰할아버지는 마히토가 돌의 악의를 간파할 수 있기 때문에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고 말합니다. 필자의 경우, 이 대사가 창작자로서의 고뇌를 정확히 담아낸다고 느꼈습니다. 완벽한 세계를 만들겠다는 욕망 자체에 이미 악의가 숨어있다는 통찰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마히토는 다시 눈을 뜨고, 칼을 갈며 자신을 요리하려는 앵무새 앞에 놓입니다. 왜가리가 나타나 마히토를 구해주고, 정신을 잃은 히미가 앵무새들에 의해 어디론가 옮겨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왜가리는 나츠코의 침실로 마히토를 인도하며 금기를 깬 히미를 인질로 삼아 앵무새들이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앵무새들의 대왕은 마히토와 왜가리가 발을 딛는 계단을 끊으며 큰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앵무새 대왕은 마히토와 히미가 금기를 어겼다고 항의하고, 큰할아버지는 자신이 잘 해결하겠다며 대왕을 돌려보냅니다. 결국 마히토는 완벽한 가상 세계 대신 고통과 모순이 가득한 현실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결단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새어머니와의 어색한 관계, 전쟁의 참혹함 모두를 안고서도 현실로 돌아가겠다는 마히토의 용기는 관객에게 묵직한 위로를 건넵니다. 부모님이 힘들어하실 때 믿고 따라가야겠다고 다짐했던 제 마음이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와 맞닿았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명백히 대중성을 포기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난해함 속에서 거장의 80년 생애가 녹아든 진실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론

마히토처럼 우리도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부모님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삶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 영화는 친절한 답을 주지 않지만, 관객 각자가 자신만의 '돌'을 찾도록 권유하는 기묘한 마스터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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